막을 내린 순간부터 다음 1년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패션계의 축제, “멧 갈라(Met Gala)”가 지난 5월 1일 개최되었습니다. 매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리는 이 축제는 축제 1년 전 다음 회차의 주제를 선정하는데요,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유명 인사가 이를 어떻게 구현하였는지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해 이날 단 하루, 전 세계의 이목이 뉴욕에 쏠린답니다.
올해의 주제는 “칼 라거펠트”입니다. 2019년 서거한 그는 펜디, 클로에 등 명품 브랜드의 수장으로 수십 년간 활약하며 패션계의 살아있는 신화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80년대 침체하였던 샤넬을 단숨에 부흥시킨 업적으로 시대를 풍미한 패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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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라거펠트는 생전 “패션은 옷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패션은 변화에 관한 것이다.”라며 개인의 무한한 가능성을 긍정하면서도, “나는 남자와 패션을 논의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는다. 그보다 더 들을 가치가 없는 것은 없다.”라며 유독 남성에 대해 각박한 관점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2023년 멧 갈라는 그를 추모하는 남성들의 다양한 표현이 두드러진 곳이었습니다. 다채로운 색상과 해석을 보면 칼 라거펠트도 자신의 발언을 재고할까요? 2023년 멧 갈라에서 포착된 놀라운 순간을 소개합니다!
타이카 와이티티


출처: The Taika Archives Twitter
<토르: 라그나로크>, <조조 래빗>으로 2019년 영화관을 제패한 이래 나날이 승승장구 중인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새로운 형태의 턱시도를 선보였습니다. ‘샤넬’의 상징인 진주와 검은 동백꽃을 매치하고, 생전 라거펠트가 자주 선보였던 직선 형태의 디자인으로 디자이너를 완벽히 재현하였습니다. 동시에 단색조의 젠더리스한 옷차림이 그의 여유로운 분위기와 어우러져 한층 더 빛을 발합니다.
키 호이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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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오랜 무명 기간을 청산하고 많은 이에게 희망을 선사한 영화배우, 키 호이 콴은 ‘칼 라거펠트’하면 떠오르는 그의 상징적인 옷차림을 다시 레드카펫에 가져왔습니다. 사소한 디테일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은 점이 눈에 띄는데요, 가죽 장갑부터 넥타이 위의 브로치, 까만 선글라스를 똑같이 재현하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칼 라거펠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긴 몸과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옷 “핏”을 살린 점이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한 사람만큼 디자이너를 기쁘게 할 사람이 있을까요?
바즈 루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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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핀터레스트
<물랑 루즈>, <위대한 개츠비> 등,영화로 관객의 눈과 귀를 완벽히 압도하기로 유명한 바즈 루어만 감독. 칼 라거펠트의 90년대 샤넬 콜렉션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그의 옷은, 검은색과 흰색이 선명히 대조를 이루어 균형을 잡아주는 동시에 입체적인 느낌을 자아냅니다. 두 색으로만 이루어진 절제된 그의 옷차림과 반대로 극단적으로 화려한 부인의 옷차림이 조화를 이뤄 자신 있고 당당한 멋들어진 한 쌍을 연출합니다.
자레드 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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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멧 갈라 도중 나타난 이 거대 고양이로 인해 사방이 분주해졌는데요, 이 고양이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정답은 “슈페트”로, 생전 디자이너가 매우 아낀 반려묘입니다. 2011년에 입양돼어 그의 생애 내내 함께한 슈페트는, 130만 달러에 달하는 유산까지 상속받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고양이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럼 고양이 탈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매해 참석하는 멧 갈라에서 정말 최선을 다해 임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가 없는 멧 갈라는 팥 없는 찐빵”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사람, 바로 배우 자레드 레토입니다. 그의 독특한 정신세계는 멧 갈라에서 특히나 효력을 발휘하죠. 올해에도 역시나 인간 크기의 슈페트로 등장해 모두를 놀라게 한 그는, 이내 탈을 벗고 ‘진짜로’ 입고 온 옷을 드러냈습니다. 탈이 고양이 슈페트를 기념한다면, 안에 입고 온 옷은 디자이너를 기리는 것이었던 거죠.


출처: Harper’s Bazaar
검은 가죽장갑과 일자로 떨어지는 슈트 바지, 검은 구두까지 라거펠트의 트레이드 마크를 모두 갖춘 동시에 나풀거리는 속이 비치는 소재의 부드러운 디자인의 셔츠를 입어 생전 라거펠트가 그려낸 성별을 뛰어넘은 패션을 구현하였습니다. 색감을 검은색으로 통일해 디자이너의 시크한 분위기를 재현하면서도 그의 죽음을 다시 한번 추모하는 동시에 그만의 라거펠트를 다시 한번 그렸습니다.
단 한 사람에 관해 이렇게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다니, 신기하지 않나요? 이전의 레드 카펫은 여성의 패션에만 주목했다면, 이제는 그렇지 않답니다. 자신만의 개성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사람이 각광받는 시대가 왔습니다. 시선을 돌려 남이 아닌 ‘나’에게 주목해보는 것은 어떨까요?